2008. 8. 27. 00:50 마음살이

20년만에 통화

전화기를 붙잡고 망설이기만을 3주째였다.
20년만의 통화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것이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다시 종료 버튼을 누르기를 반복...
애꿎은 메모지에 낙서만 휘어 갈기다가 결국은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될때로 되라~!!'

긴 연결음이 지나고  드디어 지구 반대편과 연결이 되는 순간이였다.

'알로~!!'

난 여보세요를 외치고 드디어 기나긴 터널을 지나 대화가 시작 되었다.
마침 고모가 전화를 받으셨다.

"누구세요?~"
"수정이예요."
"수정이?~"
"너 어디니?"
"한국이요.~"
"한국 어디니?"
"경북이요."
"서울 아니니? 너 서울에 있었잖아?"
"네 그렇게 됐어요."

내가 해야할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가슴을 졸였다.
그냥 진심을 담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될 것을 혹여나 그쪽에서 나의 대화를 거절 할 것 같아 겁먹은 토끼마냥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편지를 하시겠다고 주소를 불러 주란다.
그래서 주소도 불러 드리고 기나긴 대화를 했다.
전화비가 얼마 나오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곳 식구들의 근황도 알아가고 현재 우리가 사는 이야기도 들려 들었다.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아 맘이 많이 좋지 않다.
그동안 큰다고 수고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남들에 비해 좋지 않은 성장 환경이였지만  나름 올바르게 성장한 모습을 말로나마 전해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이 되었다. 지금의 모습 보다 훨씬 멋진 무언가가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돌아가신 그 분을  떠올리며 많이도 울먹였다.
세삼 내가 살아 온 지난 날들이 슬라이드 처럼 지나갔다.

고모가 리오에서 찍은 우리들의 사진을 매번 바라보고 생각 많이 하셨단다.
리오에서의 우리는 아주 꼬마였는데...

포르투갈어를 기억 하냐고 물으셨다.
난 인사말 정도 밖에 기억을 못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셨다.
그곳에서 한국으로 올때만 해도 아주 유창 했었는데..

많이 사랑하신다는 말을 뒤로 우리는 전화를 끊어야했다.
그리고 잠시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희미하게 울었다.
돌아가신 그분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지나간 세월을 어떻게 잘 견뎌 왔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터진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울만큼 울고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우리는 고모가 보내실 편지를 기다리고
우리 자매는 고모에게 보내드릴 이쁜 사진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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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슴뛰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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